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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구절 - 고린도후서 9장 6절

요점은 이러합니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새번역)

Here’s the point: he who plants sparingly also harvests sparingly. (CJ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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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9:6


이 본문은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 중 유대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에 대해 얘기한다. 

 

적게 심는것, 인색하게 베푸는 것

고후 9:6

  • 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사람은 많이 거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KLB)
  • The point is this: whoever sows sparingly will also reap sparingly, and whoever sows bountifully will also reap bountifully. (ESV)

<참고 구절>

  • 잠언 11:24-25 남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써도 더욱 부유해지는 자가 있고 지나치게 아껴도 여전히 가난한 자가 있다. 선한 일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사람은 부유해질 것이며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자기도 도움을 받을 것이다. (KLB)
  • 잠언 22:9 남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과 음식을 나눠 먹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 (KLB)

고린도후서 9:6절의 내용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자는 많이 거둔다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님은 자명하다. 영어 버전에서 '적게'는 'sparingly'로 되어 있다. 적은 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낭비를 전혀 하지 않는, 인색함으로 하는 것의 의미도 있다. 

심기는 심되, 아끼는 마음으로, 아까워하는 인색한 마음으로 심으면, 인색한 수준의 열매밖에 못 거둘 것이고, 마음을 넓게 열어 풍성하게 심으면 풍성하게 거둘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그 다음 구절에서 확인해 주는 듯하다.

[고후 9:7]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것이 물리적인 양의 많고 적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연보)를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인색함이 없이 하라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심을 수 있으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가진 어떤 것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심어야 한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내게 그런 부담을 주신다면 나의 필요를 하나님이 풍성히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 없이 기쁘게 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심을 수는 있다. 무리하게 많은 헌금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하여 주신다는 확신이 없이는 절대 기꺼이, 기쁘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가 넘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심는 사람에게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씨를 마련하여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여러분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입니다.
고후 9: 8, 10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약속의 풍성함을 믿어야만 기쁜 마음으로 심을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심은 결과

우리가 후하게 헌금을 하며, 기쁜 마음으로 연보를 하면 그 일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는 이들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너그럽게 돕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봉사의 통로가 된 자들에게도 중보의 복이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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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색한 마음으로 드리는 십일조와 헌금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는 말씀은 처음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면, 특별히 돈과 관련된 부분에서 나는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십일조를 당연히 하고, 다른 작정헌금들도 하지만, 내 속에는 거의 항상 인색한 마음이 있었다. 

불안한 경제, 이제 성큼 다가온 노후, 수많은 사람들의 재테크 성공담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며 불안감에 떨었다.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하는 것은 성경을 읽을 때나, 교회안에서 나눔할 때나 가능한 일이지 현실세계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며 꼼꼼한 재테크 노하우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계산 속에는 십일조도, 선교헌금도, 건축헌금도 없다. 종종 이런 헌금이 내 지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걸 보며, 나는 저 사람들처럼 재테크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경제적 압박이 심할 수록 그런 생각이 더 든다. 그 돈을 헌금대신 저축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다가, 이런 불경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다그치며, 무력한 마음으로 돈계산을 하지 않는게 상책이라며 결론 내리는 게 일상이다.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십일조와 헌금은 적어도 내게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믿는 신앙고백이 아니라, 그냥 당연히 지켜야하는 의무였다. 의무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항상 인색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님과 재물

본문을 묵상하면서, 내 신앙을 돌이켜보니 처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은혜는 온데간데 없고, 여전히 돈에 매여 살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과 재물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면 나는 한쪽을 더 중히 여기고 다른쪽을 업신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6: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하나님도 믿고 재물도 의지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사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재물을 섬기고 있는 것 아닌가?

 

돈과 은혜 그리고 자유

김형익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나 자신에게 다시 들려준다.

이제 [은혜와 돈] 시리즈를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돈에 매이지 마십시오. 돈에 묶여 살지 마십시오.
돈이 여러분의 시간을 좌우하게 하지 마십시오. 돈이 여러분의 감정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은혜에 매여야 하고, 은혜에 묶여야 하며, 은혜가 여러분의 시간을 좌우하고 은혜가 여러분의 감정을 지배해야 합니다. 돈이 여러분이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십시오.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은혜가 이런 일을 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돈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이 여러분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은혜가 여러분의 돈을 통해서 주는 행복을 느끼십시오. 경험하십시오. 여러분만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 그 누군가를, 그리고 주의 백성을 기쁘고 감사하게 하며,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아십시오. 무엇이 말입니까? 은혜로 적셔진 하나님의 백성의 돈이 말입니다.
여러분의 돈은 하나님의 은혜로 적셔졌습니까?
어떤 신학자의 말입니다.
“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To talk about money is to talk about God.).” 

하나님께서 고린도후서 8~9장에서 우리가 본 바, 그 은혜의 풍성함을 우리 모두가 누리고, 이 은혜의 황금사슬을 경험하는 복된 은혜를 우리 교회에게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벧샬롬교회 홈페이지 http://bschurch.net/bs/05sermon/02.view.php?cat=46&page_nums=3&id=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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