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8장은 성경 가운데서도 유난히 조용하면서,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장막을 찾아오시고, 다시 한 번 약속을 말씀하시는 자리입니다.그러나 그 약속을 듣는 사라는 울지 않습니다. 항의하지도 않고, 간절히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사라의 반응을 단 한 문장으로 기록합니다.“사라가 속으로 웃었다.”"속으로 웃었다": 비웃음이 아닌 깊은 체념이 웃음은 가벼운 불신의 웃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태도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웃음은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람이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음으로 자신을 지키려 할 때 나타나는 반응에 가깝습니다.기대가 다시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접어 두는 방식의 웃음입니다. 체념에 가까운 웃음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사라는..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은 86세에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16장 마지막 절과 17장 1절 사이, 무려 13년의 시간을 침묵으로 건너뜁니다.“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창 17:1)아브라함의 나이 99세. 생물학적으로 모든 가능성이 끝난 이 시점에 하나님은 왜 다시 찾아오셨을까요? 그리고 왜 하필 이때 그의 이름을 바꾸시고 할례를 명하셨을까요? 오늘은 창세기 17장에 숨겨진 구속사적 비밀과 하나님의 의도를 깊이 있게 묵상해 봅니다.13년의 침묵과 '엘 샤다이'의 등장지난 13년 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요? 아마도 그는 이스마엘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며 "이 아이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사구나"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은 ..
성경을 통독하다 보면 우리의 현대적 감수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창세기 16장, 광야로 도망친 여종 하갈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창세기 16:12) 내 사랑하는 아들이 '들나귀'가 되고 평생 사람들과 부딪치며 산다니요. 얼핏 보면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악담이나 저주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의 깊은 의미와 당시의 생태적, 정치적 배경을 알고 나면 이 말씀은 노예였던 여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벅찬 '자유의 선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오늘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주어진 예언을 생태학적, 정치적, 신학적인 세 가지 관점에서 깊이 있게 ..
우리는 보통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이 거둔 멋진 승리를 기억합니다. 318명의 가신을 이끌고 4개국 연합군을 격파한 기적 같은 승리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따라 승리 직후인 15장의 첫머리가 ‘두려워하지 말라’로 시작된다는 점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상황을 한번 그려보았습니다.전쟁의 흥분이 가라앉고, 적막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성벽이 있는 든든한 성에 사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들판에 텐트를 치고 사는 유목민일 뿐이었죠.‘만약 전열을 정비한 그들이 보복하러 돌아오면 어쩌지?’, ‘나는 막아낼 성벽도 없는데...’대단한 승리 뒤에 찾아온 것은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공포와, 빈손으로 남은 허무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혀 떨고 있는 타이밍에 하나님은 찾아오..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니, 너는 가서, 길이로도 걸어 보고, 너비로도 걸어 보아라.” 아브람은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았다. 거기에서도 그는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창세기 13:14-18 RNKSVhttps://bible.com/bible/142/gen.13.18.R..
오늘 창세기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하나가 생겼습니다.우리는 흔히 아브라함이 100세에, 사라가 90세에 이삭을 낳은 것을 두고"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지금까지는 "아유, 당연히 100세 할아버지가 아이를 낳는 건 말이 안 되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넘겼었거든요.그런데 오늘 창세기 11장의 족보를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니,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지점을 발견했습니다."어? 그 당시엔 100세도 아주 늙은 건 아니잖아?"창세기 11장에는 셈의 후손들의 족보가 나오는데요. 수명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 아브라함의 조상 셈은 600세를 살았습니다. * 증조할아버지 뻘인 셀라는 433세를 살았고요. * 할아버지 나홀은 29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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