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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독하다 보면 우리의 현대적 감수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창세기 16장, 광야로 도망친 여종 하갈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창세기 16:12)
내 사랑하는 아들이 '들나귀'가 되고 평생 사람들과 부딪치며 산다니요. 얼핏 보면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악담이나 저주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의 깊은 의미와 당시의 생태적, 정치적 배경을 알고 나면 이 말씀은 노예였던 여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벅찬 '자유의 선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주어진 예언을 생태학적, 정치적, 신학적인 세 가지 관점에서 깊이 있게 재해석해 봅니다.

‘들나귀(페레)’의 반전: 길들여지지 않는 생명력의 상징
우리는 흔히 나귀를 고집스럽거나 우둔한 짐승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 원어에서 쓰인 ‘페레(פֶּרֶא)’는 우리가 아는 집나귀가 아닙니다. 이는 광야 서식종인 ‘시리아 들나귀(Equus hemionus hemippus)’를 가리킵니다.
욥기 39장 5-8절을 보면 이 동물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들나귀는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존재이며, 도시의 소음과 감독자의 채찍을 비웃고 광야를 자유롭게 질주하는 생명체입니다.
당시 하갈의 신분은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공포는 "내 뱃속의 아이도 나처럼 평생 주인에게 매여 짐을 지는 노예로 살겠구나"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 하갈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은 들나귀가 될 것이다."
이것은 비문명적인 야만인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네 아들은 결코 사람의 멍에를 메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압제 질서 바깥에서,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생명력으로 살아갈 것이다"라는 신적 반전(Divine Reversal)의 선언입니다. 노예의 자식에게 주어진 '완전한 해방'의 약속,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요?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폭력이 아닌 '주권'의 회복
이어지는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라는 구절 때문에 많은 분이 이스마엘을 '싸움꾼'이나 '폭력적인 민족의 조상'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의 뉘앙스는 훨씬 더 정치적이고 권위적입니다.
히브리어로 ‘손(야드, יָד)’은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니라 ‘힘, 권력, 주권(Sovereignty)’을 상징합니다. 또한 ‘치다’와 연결된 동사의 맥락은 단순한 폭력보다는 관계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고대 근동의 약소 부족들은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거나 흡수당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 약속하십니다. "그가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라도"라는 뒷부분과 연결해 보면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집니다. "세상 모든 권력이 그를 굴복시키려 해도, 그는 결코 종속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주권을 가질 것이다."
즉, 이 예언은 약탈과 폭력의 예고가 아니라, '억눌림의 종식'과 '상호 주권의 선언'입니다. 하갈에게 이 말씀은 "내 아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자신만의 영토를 가진 독립적인 통치자가 된다"는 생존과 번영의 보증수표였습니다.

하갈의 신학(Hagarine Theology):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이 놀라운 예언을 들은 하갈의 반응이 바로 이 해석이 옳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만약 저주였다면 하갈은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성경 역사상 전무후무한 고백을 합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엘 로이)’이라 하였으니...” (창세기 16:13)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인간이 하나님께 새로운 이름을 지어드린(naming) 케이스는 하갈이 최초입니다. 아브라함도 하지 못한 일을, 이집트 출신의 여종이 해낸 것입니다.
하갈은 "하나님이 내 고통을 들으셨다(이스마엘)"는 것을 넘어, "비천한 나를 찾아와 눈을 맞추고 살피시는 분"임을 체험했습니다. 이는 남성 중심, 주류 중심의 언약사에서 소외되었던 피지배 여성이 자신의 신앙적 주체성을 회복하는 극적인 장면입니다. 신학자들은 이를 '하갈적 신학(Hagarine theology)'의 출발점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생존과 자유의 복음
하갈에게 광야는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주신 말씀은 '악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너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라는 자유의 선언이었고, "너는 강한 민족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라는 생존의 확증이었습니다. 하갈이 받은 이 '들나귀의 축복'은 오늘날 억압받고 힘겨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살피시는 분(엘 로이)'이라는 위로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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