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창세기 18장은 성경 가운데서도 유난히 조용하면서,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장막을 찾아오시고, 다시 한 번 약속을 말씀하시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듣는 사라는 울지 않습니다. 항의하지도 않고, 간절히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사라의 반응을 단 한 문장으로 기록합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었다.”

"속으로 웃었다": 비웃음이 아닌 깊은 체념
이 웃음은 가벼운 불신의 웃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태도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웃음은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람이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음으로 자신을 지키려 할 때 나타나는 반응에 가깝습니다.
기대가 다시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접어 두는 방식의 웃음입니다. 체념에 가까운 웃음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라는 하루 이틀 약속을 기다린 사람이 아닙니다. 젊은 시절에 들었던 약속을, 노년의 몸으로 다시 듣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가능성은 이미 닫힌 지 오래고, 사회적 역할 또한 끝났다고 여겨지는 시점입니다.
그런 사라에게 “내년 이맘때에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은 기쁨보다는 현실을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사라는 말로 반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따지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그저 “속으로 웃었다”고만 말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마음 안에서만 조용히 웃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반응: 책망 대신 건네신 질문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공개적으로 꾸짖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없다고 정죄하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질문하십니다.
“사라가 어찌하여 웃느냐?”
이 질문은 심문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도록 여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사라의 태도를 고치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에게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다시 기대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더 믿어라”고 압박하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은 시간을 정하십니다. “정한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체념한 사람에게 가장 잔인한 말은 “희망을 가져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희망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약속을 먼저 내려놓으십니다. 사라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삭(웃음), 체념이 약속의 이름이 되다

중요한 사실은, 이 약속이 즉시 성취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날 밤에 상황이 바뀌지 않습니다. 사라의 몸도, 환경도, 현실도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사라의 침묵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순간부터 기다림은 공허가 아니게 되었고, 침묵은 무의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태어날 아이의 이름은 ‘이삭’, 곧 ‘웃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웃음을 지워버리지 않으십니다. 부정하지도 않으십니다. 그 웃음을 약속의 이름으로 남기십니다.
체념의 웃음은 제거되지 않고, 은혜의 역사 안으로 편입됩니다. 사라의 웃음은 믿음의 반대말이 아니라,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람이 하나님 앞에 드러낸 가장 솔직한 언어였습니다.
오늘, 웃음 뒤에 숨어 우는 당신에게
창세기 18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구체적으로 말을 겁니다. 혹시 우리는 지금 울지도 못한 채 웃고 있지는 않은지 묻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기도할 말을 찾지 못한 상태는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기대하지 않음으로 마음을 접어 두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묻습니다.
이 본문이 주는 위로는, 우리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믿음의 수준을 묻지 않으셨고, 태도를 바로잡으라고 명령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사라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그 자리에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기대가 멈춘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현실이 막막하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문은 계속 닫혀 있고, 재정과 삶의 여러 영역에서 막힘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이 장은 분명히 말합니다.
지금의 침묵이 믿음의 실패는 아니며, 체념의 웃음이 곧 신앙의 포기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기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질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기대하지 못하는 자리까지 직접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방문으로 시작됩니다

사라의 웃음이 이름이 되어 남았듯이, 우리의 침묵과 체념 또한 하나님의 이야기 밖으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말라버린 기대와 굳어진 마음도 당신의 역사 안으로 끌어안으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언제나 인간의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문으로 시작됩니다.
오늘도 여전히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기쁨이 아니라 체념에 가깝다면, 창세기 18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이미 오셨으며, 아직 보이지 않을 뿐 정한 때를 향해 일하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사라의 웃음이 끝이 아니었듯이, 우리의 오늘 또한 마지막 장이 아닙니다.
'말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말씀묵상] 창세기 17장, 아브라함 언약의 비밀 (0) | 2026.01.23 |
|---|---|
| [말씀묵상] 창세기 16장, 하갈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0) | 2026.01.22 |
| [말씀묵상] 창세기 13장, 롯이 떠난 뒤 비로소 들리는 음성 (1) | 2026.01.19 |
| [말씀묵상] 창세기 10장. 노아의 후손,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이유 (1) | 2026.01.14 |
| [말씀묵상] 벧전 5:6-7 힘든 시기를 건너는 그리스도인의 '이중 전략' (1) | 2026.01.12 |
- 스가랴
- 여호수아
- 기도
- 하나님의약속
- 영적침체
- 일어나라
- 성경묵상
- DerekPrince
- 우상숭배
- A.W.Tozer
- 창세기강해
- 염려
- 에이든토저
- 할수있거든이무슨말이냐
- 말씀묵상
- 마틴로이드존스
- 때가되면
- 기독교블로그
- 엘리사
- 강하고담대하라
- 영적우울증
- 기도응답
- 하나님을바로알자
- 30호
- 오블완
- 존파이퍼
- 하나님의평강
- 티스토리챌린지
- 빛을발하라
- 아무것도염려하지말고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7 |
| 8 | 9 | 10 | 11 | 12 | 13 | 14 |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 22 | 23 | 24 | 25 | 26 | 27 |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