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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기에 고약을 발랐다가 결국 병원에 가서 수술한 이야기

by Sonrie Xiana 2024.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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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사타구니에 조그만 멍울 같은게 만져졌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라 이게 뭔가 하다가, 아프지도 않고 크지도 않아서 잊고 지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멍울이 좀 커진 게 느껴졌다. 이게 뭐지? 혹시 심각한 병이라도 걸린건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프지는 않아서, 좀 두고 보자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께 보니 작은 고름이 맺혀져 있는 것이 아닌가?

흠.. 이건 종기 아닐까? 예전에는 종기에 고약같은거 발랐던 것 같은데? 근데, 요새는 그런거 없겠지?

아니었다, 검색해 보니 밴드 모양으로 나온게 있었다. 뭔가 깔끔하고, 효과가 좋을 것 같이 생겼다. 흠.. 그럼 고약을 사서 발라볼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워낙 민망한 부위에 난 종기라 누구한테 보여주고 치료받기도 꺼려지고, 별로 크지도 어쩌면 고약이란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종기치료 고약'으로 검색해 보니 의사들이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영상들 뿐이었다. '원래 의사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며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선 주의깊게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이미 고약을 사서 붙여서 이 작은 고름이 톡 튀어나오고, 다시 고약으로 완전 치료까지 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가까운 약국으로 갔다. "혹시 고약 있어요?" 이런 질문 난생 처음이라 어색하고 조금 부끄러웠다. 약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검색에서 보았던 그 고약을 꺼내며, 어디에 종기 났는지 물었다. "사타구니요"라고 속삭이듯 말하며, 이거 몇개나 붙여야 낫는지 물어보니, 포장안에 3개가 들어있으니 일단 사용해 보라고 한다. 

뭔가, 약사가 이정도 권할 정도면 고약이라는게 효과가 있긴 있는거구나 확신하고 집으로 갖고 와서 고약을 붙였다. 고름이 조금 더 커져 있었고 멍울은 훨씬 컸고 단단했으며 통증까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최대한 빨리 고약을 사서 붙일 걸. 

하루 정도 후에 교체하라고 해서, 하루가 지난 후 고약을 교체하려고 보니 이게 웬걸, 고름이 안터졌을 뿐 아니라 크기가 한 3배쯤 커져 작은 봉우리처럼 솟아 있었다. 색깔은 거의 피부가 썩은 듯햇고, 통증도 더 심해졌다. 

오늘 이사준비해야 하는데 시간은 없지만 마음이 갑자기 급해졌다. 동네 병원들 알아본 후 간호사가 대답을 시원시원하게 잘 해 준 병원을 골라서 갔다. 의사선생님과 면담을 시작하자마자 고약을 붙였다고 했더니 표정이 갑자기 확 바뀌더니 "아니, 60년대 약을 왜 2024년에 쓰시냐?"며 화를 냈다. "사람들이 자꾸만 고약 발라서 병을 키워서 온다"고 한다. 그냥 바로 병원오면 항생제로 좋아질 수 있는 것도 고약 발라 병을 키워오면 수술까지 해야 한다며 흥분해서 말을 이어간다. 아픈건 난데, 혼까지 나야 해서 기분이 썩좋지 않았지만 뭐 할 말도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한바탕 꾸지람을 듣고 초음파를 찍은 후 결론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소마취를 하고, 해당부위를 잘라서 고름과 낭종을 다 제거하고 다시 꿰매야 하는데 국소마취를 해도 아프다고 했다. 시간은 15분 정도로 길지 않지만, 일단 아프다는 말에 갑자기 겁이 났다. 부어오른 종기 때문에 아팠고, 고약발랐다고 면박받아서 마음도 아팠고, 살을 잘라서 다시 꿰매는 '수술'까지 한다고 하니 공포감이 몰려왔다. 

어쨌든 수술복 바지로 갈아입고, 수술대 위에서 민망한 포즈로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수술대위에 조명 불이 켜졌다. 수술받다가 아프면 얼굴 찌푸리다 울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내 얼굴을 수건으로 덮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부끄러워서요?"라고 물었다. 힝... 

두꺼운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눈을 감았다. 어쨌든, 내 표정이나 눈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어떻게든 버텨보자 싶었다. 그렇게 수술이 시작되고,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팠다. 나는 최대한 참아보려고 하다보니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선생님이 아프면 앓지 말고 소리를 내라고 했는데, 그게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그냥 최대한 참으며 앓는 소리를 계속 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서러웠다. 소리를 크게 내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서럽게 울었든지 의사선생님도 내게 조심스럽게 괜찮다고 나를 달래주고 간호사 선생님들도 얼마나 아프면 그러겠냐며 위로해 줬다. 

사실, 수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에 힘든 일이 있었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애쓰고 있는 상황인데 아주 정말 초 미니 수술이긴 해도 살을 찢고 다시 꿰매는 수술을 혼자 이사준비를 해야 하는 날에(벌써 버겁다) 하게 되다니.. 쓸쓸하고 외롭고 서려웠다. 켜켜히 쌓인 감정이 아픈 김에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실밥은 2주 후에 뺀다고 했다. 그동안은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가서 체크를 해야 한다. 물이 들어가면 안된대서 방수테이프와 소독약도 샀다. 그렇게 2주 동안은, 내 선택의 결과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고약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것은, 그냥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더구나 종기가 난 부위를 누구에게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마음을 그렇게 먹고 나니까, 모든 상황을 내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방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의 충고는 들리지 않았고, 약사가 괜찮다고 했으니 당연히 괜찮겠지, 홍보물도 보니까 굉장이 그럴듯 하던데... 옛날부터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고약이 나오는 것 보면 이유가 있지 않겠어? 등등.

그렇지만, 내가 틀렸다. 혼자서 해보려고 했던, 부끄러운 부분을 보여주기 싫어서 알아서 해치우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했다. 병원에 가야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민망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나를 드러내야 했다. 그래도 결국 고름을 짜냈고, 낭종도 제거했다. 이제 나을 일만 남았다. 

이 일을 돌아보니, 내 삶을 전체로 봐도 이런 내 행동과 참 많이 닮아있단 생각을 했다. 작은 문제를 인식했을 때, 한계에 다다랐을때 문제의 근원을 찾으려 노력하고,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대신, 모른척하거나 잘난척을 했다. 이렇게 살다간 평생 멋있는 사람 안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들수록 변하기 어렵다는 말도 사실이다. 그래도 노력해보고 싶다.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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