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래 내용은, 룻기 1장을 본문으로 한 존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둠과 고통의 긴 터널 끝에서 만난 설교로 인생을 바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Ruth: Sweet and Bitter Providence
저는 앞으로 4주간에 걸쳐서 룻기를 매주 한 장씩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번 7월에 여러분이 통찰력을 얻고 새롭게 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이 아름다움 이야기를 매주 한 번씩 읽는 것입니다. (천천히 읽으면 25분 정도 걸립니다.) 룻기는 “하나님이 어떻게 신비한 방법으로 그의 일을 행하시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은 꿈이나 비전, 선지자가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계속되는 비극이 믿음에 도전을 줄 때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힘든 시간 가운데서도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평범한 믿음의 삶에서 뭔가 위대한 일이 일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룻기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격려하는 책이며, 저는 여러분이 이 여름에 새롭게 되며 격려받기를 원합니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
룻기 1장1절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사사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약속의 땅에 들어간 때부터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대략 1500BC-1100BC) 400년간의 기간을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서 사사기는 룻기 바로 앞에 나오는데 마지막 절에 보면 그 때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21:25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당시는 이스라엘의 굉장한 암흑기였습니다. 사람들이 범죄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치려고 적들을 보내시고, 그러면 그들은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은 자비롭게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건지십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반역했고 겉으로는 이스라엘에서의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위한 목적이 실현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룻기를 통해서 우리는 그러한 최악의 시대에 하나님의 숨겨진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룻기 4:22를 보십시오. 사사시대에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오벳입니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이고 이새는 이스라엘의 최고 영광의 시대를 이끈 다윗을 낳습니다. 이 짧은 책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최악의 시기에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이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은 일하실 수 있고 일하십니다. 이것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또한 개인적, 가족 단위에서도 사실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악의 시기에도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멀리 계시다고 생각될 때, 아니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서 돌아섰다고 생각될 때, 사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삶의 더욱 큰 행복을 위한 초석을 놓고 계십니다.
연약한 감정으로 주님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그분의 은혜를 신뢰하십시오.
찡그린 섭리 위에
그분은 웃는 얼굴을 숨기고 계십니다.
저는 이것이 룻기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의 감화에 따라 이 책을 쓴,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어떻게 우리를 가르치시는지 살펴봅시다.
기근에 슬픔을 더하다
1절에서 5절은 나오미의 고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선 (1:1) 나오미와 그의 남편 엘리멜렉 그리고 그들의 자녀 말론과 기룐이 사는 유대지방에 기근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누가 기근을 내리시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레위기 26:3-4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비가 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가혹한 손길입니다.
그래서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땅 (1:15; 삿 10:6) 모압으로 길을 떠나기로 합니다. 이것은 위험한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변 땅으로부터 그의 백성들을 따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나오미의 남편이 죽었을 때 (1:13), 하나님의 심판이 그녀에게 임하여 기근에 슬픔을 더하신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4에서) 그녀의 두 아들이 모압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룻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나님의 심판이 입합니다. 5절은 십 년간의 자녀 없는 결혼 이후에 닥친 나오미의 비극을 애기합니다.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기근, 이방 땅 모압으로 이주, 남편의 죽음, 아들들의 이방 여인과 결혼 그리고 두 아들의 죽음 – 연이어서 비극 위에 비극이 더해집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룻과 오르바를 돌려보내려는 나오미
6절에서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유대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는 잠시 그녀와 함게 길을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8-13절에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돌아가라고 설득하려 애씁니다. 제 생각에는 룻과 오르바를 돌려 보내려는 나오미의 노력에 이토록 많은 구절을 할애한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오미의 고통
우선, 이야기는 나오미의 고통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11절에서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다시 말하면 나오미는 그들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녀의 조건은 며느리들의 상황보다 더 나쁩니다. 며느리들이 나오미와 그녀의 아들들의 이름에 신실하고자 해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고통뿐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13절 말미에서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나를 따라 오지 마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치셨다. 너희의 삶도 나처럼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이스라엘의 전통
8-13절에 대한 두 번째 이유는 이어지는 장에서 펼쳐지는 나오미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스라엘의 전통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 전통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그의 형제 또는 가까운 친척이 과부와 결혼하여 형제의 이름을 잇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신명기 25:5-10) 룻과 오르바와 결혼할 다른 아들이 없다고 말할 때 나오미는 (11절에서) 이 관습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가족의 이름을 잇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무 소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형제의 이름을 잇도록 할 또 다른 친족이 있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명백해 보입니다.
여기에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치신다는 마음이 들면 우리는 보통 우리의 소망없음을 과장합니다. 원통한 마음이 지나쳐서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빛 줄기를 보지 못합니다. 기근을 끝내시고 귀향 길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1:6). 나오미의 가족을 잇기 위해 근족을 남겨두신 분도 하나님이었습니다 (2:20). 그리고 룻을 나오미와 함께 거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하나님의 가혹한 섭리에 대해 너무나 원통한 마음이 가득하여 그녀의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볼 수 없습니다.
룻의 신실함
8-13절에 대한 세 번째 이유는 나오미에 대한 룻의 신실함이 놀라운 것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4절은 오르바가 나오미에게 작별 인사를 했지만,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다고 말합니다. 15절의 또 다른 간청도 룻을 떠나게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나오미가 그들의 미래가 암울함을 설명한 후여서 더욱 놀랍습니다. 룻은 과부로 무자한 상황이 소망없는 미래임이 명백한 상황임에도 떠나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미래를 검은색으로 칠했고 룻은 나오미의 손을 잡고 그 어두운 미래로 함께 걸어 들어갔습니다.
1:16-17에서 룻의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이상적인 여인
이 말은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놀랍습니다. 곤궁한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헌신은 그야말로 경이롭습니다. 첫째는 그 결심이 자신의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룻이 아는 한, 나오미에게는 더 이상 아들이 없으므로, 그것은 무자한 과부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근족이 아닌 사람과 결혼하면 나오미의 가족에 대한 그녀의 헌신이 파기될 것입니다. 셋째, 그것은 미지의 땅,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습, 새로운 언어의 삶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넷째, 그 헌신은 결혼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17절) 다시 말해서 룻은 다시는, 나오미가 죽더라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놀라운 고백은 이것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6절). 나오미는 13절에서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라고 말합니다. 나오미가 경험한 하나님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자신의 종교적 유산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습니다. 룻은 아마도 수 년 전에 남편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홍해에서 보여주신 능력, 평화와 공의의 영광스러운 목적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그렇게 헌신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룻은 나오미의 고통스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상적인 여인의 그림을 봅니다. 현재의 고통스러운 좌절 너머를 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세상의 안전과 위안으로부터의 자유. 미지의 이방세계로 가는 모험을 할 수 있는 용기. 하나님이 정해주신 관계에 대한 철저한 헌신. 오, 우리 베들레헴 교회가 그런 여성을 세울 수 있기를!
나오미의 신학: 옳은 것과 그른 것
그래서 룻과 나오미는 함께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19절). 그러나 나오미는 20절에서 이렇게 반응합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희락)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괴로움)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의 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복음적인 잡지와 책들을 지배하는 하나님에 대한 감정적인 관점과 나오미의 신학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오미는 세 가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셨다. 나오미의 문제는 역시 이방땅으로 갔던 요셉의 이야기를 잊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간통한 여자에 의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습니다. 요셉은 나오미처럼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라고 말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을 지켰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요셉 개인과 이스라엘 민족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창세기 50:20에서의 교훈은 이것입니다.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나오미가 나라들과 가족들의 일 가운데 통치하시고, 날마다 고통과 즐거움을 허락하시는 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옳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목적의 신호에 눈을 열 필요가 있습니다.
기근을 몰아내시고 귀향길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22절 말미의 섬세한 손길을 보십시오.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나오미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볼 수만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오미는 룻에 대한 눈도 열어야 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선물입니까! 얼마나 귀한 복입니까! 그러나 나오미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 사람들 앞에 서서 2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나오미!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고난의 밤을 지내면서 너무 지쳐서 새벽의 기쁨을 보지 못합니다. 룻을 통해서 남자아이를 얻고, 그 아이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의 할아버지가 될 것이며, 이 이스라엘 왕이 모든 왕 중의 왕, 온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시가 될 것을 알았다면 나오미는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연약한 감정으로 주님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그분의 은혜를 신뢰하십시오.
찡그린 섭리 위에
그분은 웃는 얼굴을 숨기고 계십니다.
요약: 4가지 교훈
본문의 교훈을 4가지로 요약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일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나라들을 통치하시고 (다니엘 2:21) 가정들을 통치하십니다. 그의 섭리는 미국의회에서부터 여러분의 부엌까지 이릅니다. 구약의 믿음의 여인들과 같이 됩시다. 다른 모든 것을 의심해도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 삶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심과 그의 손을 금할 자가 아무도 없음(다니엘 4:35)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가 비를 내리시고 그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고 거두기도 하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우리 존재가 됩니다. 이쑤시개부터 타지마할까지 아무것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배제하고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우르시며, 모든 곳에 존재하십니다. 나오미는 옳았으며 우리도 이 확신에 동참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일을 통치하십니다.
2.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
하나님의 섭리는 때때로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를 괴롭게 –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고통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건 다 모압으로 가고 이방여인과 결혼한 죄 때문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시편 34:19를 보면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이나 신약 어디에서도 믿는 자들은 삶에서 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재난이 그녀의 불순종에 기인한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두 배로 격려가 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당신의 심판을 기쁨으로 바꾸시기 원하시고 그렇게 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죄로 인하여 룻이 그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다면 그녀가 다윗의 할머니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두 배로 놀라운 일이 됩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미래에 소망이 없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3. 하나님의 선한 목적
그것은 세 번째 교훈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일을 통치하시고, 그의 섭리가 때로 어려울 뿐 아니라,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백성들의 유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암울했던 사사시대에 하나님께서 한 가정의 비극가운데 일하셔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의 길을 준비하셨음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와 룻, 보아스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을 큰 기쁨으로 채우시기 위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 여름에 여러분의 미래를 소망이 없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미래와 소망을 주시기 위해 현재 일하고 계심을 룻기에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신뢰하고 인내하며 기다리십시오.
4. 룻이 누리는 자유
마지막으로 만약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의 평생에 여러분을 따른다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룻과 같이 자유할 것임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족을 떠나고, 일을 떠나고, 미네소타를 떠나며 철저한 헌신을 하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미 여러분이 헌신한 것을 지키기 위한 자유, 용기 그리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어려운 시절이 흔들 수 없는 자유와 기쁨을 줍니다. 룻기서는 가장 암울한 시간 동안에 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했듯이 (로마서 15:4, 13) 다른 모든 성경과 마찬가지로 룻기는 우리로 하여금 소망에 넘치게 하려고 기록되었습니다.
'신앙과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역] 고통을 변화시키는 7가지 요소_바네사의 고통 속 기쁨 (0) | 2024.03.08 |
---|---|
[번역] 앞에 계신 하나님, 뒤에 계신 하나님 (0) | 2024.03.07 |
[번역]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마음으로 경험할 수 있을까? (0) | 2024.03.07 |
[번역] 내가 그만둘 뻔한 이야기 (1) | 2024.03.06 |
[번역]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시편 23편) (1) | 2024.03.06 |
- Total
- Today
- Yesterday
- 여호수아
- 영적침체
- 말씀따라가기
- 엘리사
- 천수답
- 믿음의선한싸움
- 만나중단
- 티스토리챌린지
- 영적우울증
- 뱀처럼지혜롭고비둘기처럼순결하게
- 말다섯필
- A.W.Tozer
- 물위에떠오른도끼
- 빨간색밧줄
- 기독교대안
- 주님의말씀대로
- 강하고담대하라
- 존파이퍼
- 마틴로이드존스
- 여호와샬롬
- 30호
- 갑절의영감
- 할수있거든이무슨말이냐
- 모세와같은선지자
- 하나님께보답하는법
- 순종하여받는복
- 오블완
- 하나님을바로알자
- 말씀묵상
- 에이든토저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