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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는  ‘산당(High Place, 히브리어 Bāmāh בָּמָה)이 자주 등장하고, 그것을 심각한 죄로 간주한다. 선한 왕들조차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내용도 자주 등장한다. 

이 산당이 왜 그렇게 심각한 죄로 간주되는지 이해하려면, 그 단어의 언어적 의미, 역사적 배경, 신학적 함의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산당은 단순히잘못된 예배 장소 문제가 아니라하나님을 대체하는 신앙 구조의 붕괴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산당 뜻과  어원

산당의 히브리어 Bāmāh (בָּמָה)는 문자적으로 ‘높은 곳, 언덕, 제단이 있는 언덕’을 뜻한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신은 높은 곳에 임한다”는 사상 때문에, 신을 섬길 때 주로 언덕, 산꼭대기, 또는 높은 제단을 만들었다.

따라서 “산당”은 원래 “신적 존재에게 제사드리는 높임의 장소”였지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세운 잘못된 제단을 뜻하게 된다.

처음부터 이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 하나님께서는 산당을 통해 임시적 예배의 장소로 사용하시는 것을 허용하셨다. 예를 들어 사무엘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고(삼상 9:12–14),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기 전에는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가 드려졌다(대상 16:39).

이처럼 산당은 원래 중립적인 장소였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종종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산당은 이방 종교의 영향과 결합해 하나님의 질서를 왜곡하는 장소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역사적 전환점 — 성전 건축 이후 ‘산당’의 의미 변화

산당이 결정적으로 부정적 의미로 전환되는 시점은 솔로몬 성전 건축 이후다(왕상 6–8).
신명기 12장에서 하나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만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배의 중심지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지정하셨다는 선언이다.

이후에도 산당에서 제사가 계속 드려졌지만, 그 행위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한 곳’을 정하셨기 때문에, 그 명령을 어기고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와 예배 질서를 거스르는 반역적 행위가 되었다.
즉, ‘산당’이라는 단어는 본래의 중립적 의미를 잃고, 점차 영적 타락의 상징이 되었다.

 

여로보암의 산당 — 종교적 타락을 넘어 정치적 반역

산당이 죄의 상징으로 확정되는 대표적인 사건은 여로보암의 베델과 단의 산당 건축이다(왕상 12:28–33).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사를 드리러 내려갔다가 남유다 왕에게 마음이 돌아갈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선포했으며,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 중에서 제사장을 임명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종교적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배 질서와 통치를 정면으로 거부한 정치적·신학적 반역이었다. 이후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갔다고 평가받으며, 이 사건은 북왕국의 멸망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평가 기준이 된다.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이유 — 백성의 고착화된 신앙 행태

유다 왕국의 역사를 보면, 산당은 단순히 왕의 의지로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등 신실했던 왕들조차 산당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왕상 22:43; 왕하 12:3).
성경은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 앞에 온전했음에도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그 이유는 산당이 단순한 제단이 아니라, 백성의 신앙문화로 뿌리내린 장소였기 때문이다. 백성은 멀리 예루살렘까지 제사하러 가는 대신, 가까운 산당에서 편하게 예배드리기를 원했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이고 인간 편의적 신앙이었다. 따라서 산당 문제는 왕의 결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뿌리 깊은 영적 구조의 문제였다.

 

히스기야와 요시야 — 산당 척결을 통한 신앙 개혁

산당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참된 예배 질서를 회복한 인물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두 왕뿐이다.
히스기야는 산당을 헐고 주상을 깨뜨렸으며(왕하 18:4), 요시야는 더 나아가 북이스라엘 지역의 산당까지 철저히 훼파했다(왕하 23장). 그는 산당에서 제사하던 제사장들을 숙청하고 율법 중심의 예배를 회복했다.
요시야의 개혁은 단순한 정치적 개혁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예배의 중심이심을 회복하는 신앙적 선언”이었다.

 

신학적 의미 — 산당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의 문제다

산당의 죄는 그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의 질서를 인간이 자의적으로 바꾸려 한 것에 있다.
산당은 겉으로는 경건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본질은 하나님 중심 예배의 자리에서 인간 중심 예배로의 전환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산당을 미워하신 이유다. 산당은 “다르게 예배드려도 괜찮다”는 인간의 자율성을 상징하는 장소였고, 그 자율성은 결국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이어졌다. 산당 척결은 하나님이 예배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예배 — 성전의 중심에서 인격적 중심으로

산당이 무너졌다는 것은 단지 ‘다른 제단의 철거’가 아니라, 참된 예배가 오직 하나님의 지정하신 방식 안에서만 가능함을 뜻했다. 그리고 그 방식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택하신 유일한 예배의 중심

히브리서 9장과 요한복음 4장은 이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할 때가 오나니”라고 말씀하셨을 때(요 4:21–23), 이는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예배가 종결되고, 그리스도 자신이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는 선언이었다.
그분은 성전보다 크신 분이며(마 12:6), 십자가에서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히 9:12).

이제 더 이상 사람은 산당이나 성전 같은 특정한 ‘장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임하셨고, 예배는 공간적 중심에서 인격적 중심으로 이동했다. 참된 예배는 건물 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진리와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다.

인간 중심 예배 vs. 그리스도 중심 예배

산당의 본질적 죄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자기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교회에서도 같은 유혹이 존재한다.
예배의 본질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 만족, 혹은 형식에 초점이 맞춰질 때 — 우리는 산당을 재건하는 것과 같은 영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형식과 감정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릴 때 예배는 더 이상 예배가 아니다. 예배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전된 우리 — 산당 없는 신앙의 완성

신약의 선언은 혁명적이다.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6:19).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외적인 산당이나 성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진리는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음속에 자기 방식의 예배, 자기 우상, 자기 의로움을 세운다면, 그것이 곧 내면의 산당이 된다. 참된 신앙은 외적인 제단을 헐 뿐 아니라, 내면의 산당 — 즉 하나님보다 높아진 자아의 제단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결론과 적용

산당은 더 이상 돌로 쌓인 제단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산당’은 하나님이 아닌 나의 감정, 편의, 성공, 혹은 종교적 열심으로 대체된 모든 인간 중심의 예배 형식과 태도를 말한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진리로 드리는 예배여야 한다(요 4:24).
그리스도인은 예배당 안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살아 있는 산 제사(롬 12:1)를 드리는 자다. 우리의 예배는 높은 산위에서가 아니라, 낮아진 마음과 순종하는 심령 속에서 드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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