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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으로 뒤덮인 옷을  입은 대제사장

스가랴서 3:3을 읽다가 멈췄다.

“그 때에 여호수아는 냄새 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다.” (RNKSV)

 

그런데 CJB 번역을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Y’hoshua was clothed in garments covered with dung; and he was standing before the angel.” (스가랴 3:3, CJB)

똥? 똥이 묻은 정도가 아니라 똥으로 뒤덮인 옷이라고? 순간 번역을 잘못 본 건가 싶어 히브리어 원문을 찾아봤다. 거기에는 **בְּגָדִים צֹאִים (begadim tso’im)**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begadim’은 옷, ‘tso’im’은 문자 그대로 배설물, 똥, 심한 불결함을 뜻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번역(KJV, NIV, ESV 등)은 이를 완곡하게 “filthy garments(더러운 옷)”이라고 옮긴다. 그러나 CJB는 완곡어를 거부하고 원어의 거친 뉘앙스를 그대로 살려 “garments covered with dung”이라 번역했다. 유대적 뉘앙스와 강렬한 원문 이미지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이 표현은 단순한 얼룩이나 먼지가 아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더러움이다. 대제사장이 똥범벅이 된 옷을 입고 하나님의 천사 앞에 서 있다는 그림은 충격적이다.

더러운 옷, 똥묻은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그 구절을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 위로가 올라왔다. 만약 여호수아의 옷이 먼지나 흙으로 조금 더럽혀진 정도였다면, 나는 아마 “그 정도면 나는 해당되지 않겠다”고 생각했을것 같다.

하지만 똥이라니. 그것도 옷 전체를 덮을 정도라니. 그 정도라면, 나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더 심한 건 상상할 수 없으니까. 내 삶이, 내 마음이, 내 지난날이 아무리 더럽고 형편없어도 똥 묻은 옷 안에는 포함될 것 같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그 상태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더러운 옷에서 새 옷으로

스가랴 3장은 그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게 하신다. 그리고 깨끗한 관까지 씌워주신다. 완전히 새 사람으로 다시 세우시는 장면이다.

그 똥 묻은 옷은 내 죄와 수치, 실패를 보여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 벗기고 치워버리고, 전혀 다른 옷으로 갈아입히신다. 그 순간 더 이상 나는 그 더러운 옷의 사람이 아니다.

 

똥 이야기에서 흘러내린 눈물

‘똥’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눈물을 터뜨릴 줄 몰랐다. 나 같은 사람, 더러움에 절어 있고, 치욕스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도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새 옷을 입을 수 있다.

그 옷을 입힌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결코 다시 벗기지 않으신다. 그래서 이 장면이 내게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다가왔다. 똥 묻은 옷을 입은 여호수아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묵상을 위한 짧은 질문

  • 나는 지금 얼마나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가? 
  • 하나님이 그것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신다면, 나는 기꺼이 그 손길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 여호수아에게 하신 은혜를 오늘 내 삶에 적용한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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