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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창세기 9:2, 개역개정)
“All the animals of the earth, all the birds of the sky,
all the small animals that scurry along the ground,
and all the fish in the sea will look on you with fear and terror.
I have placed them in your power.”
(Genesis 9:2, NLT)
노아의 홍수 사건 직후,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에는 미묘하지만 충격적인 변화가 감지됩니다. 창조 시(창 1장)의 평화로운 통치 질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두려움(fear)'과 '공포(terror)'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단순히 동물이 인간을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현상적 묘사를 넘어, 이 단어들이 내포하고 있는 구속사적 의미와 신학적 배경을 히브리어 원문과 정통 주석을 통해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원어적 분석: 관계의 본질적 변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MT)은 이 두 단어를 **'모라(מוֹרָא)'**와 **'하트(חַת)'**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두려움 (Mora, מוֹרָא): 어근 '야라(yara)'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본래 '경외감'을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위축을 의미합니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에게 느끼는 수동적인 두려움입니다.
* 공포/무서움 (Chat, חַת): '깨어지다', '산산조각 나다'를 뜻하는 '하타트'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두려움을 넘어, 상대의 위세에 눌려 전의를 상실하고 전율하는 상태(Dread/Terror)를 말합니다.
즉, 홍수 이후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더 이상 '사랑과 조화'가 아닌,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공포'에 기초하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2. 신학적 배경: 조화에서 생존으로
창세기 1장 28절(타락 전)과 창세기 9장 2절(타락 후)의 대조는 인간 통치권의 성격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 에덴의 질서 (Pre-Fall): 아담의 통치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랑'에 기초했습니다. 동물들은 인간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했습니다.
* 홍수 후의 질서 (Post-Flood): 죄가 관영한 세상에서 평화는 깨졌습니다. 이제 질서는 자발적 순종이 아닌 **'강제적인 공포(Coercive Fear)'**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3. 정통 주석학계의 해석: 보존을 위한 섭리 (Common Grace)
존 칼빈(John Calvin)과 카일 & 델리취(Keil & Delitzsch)를 비롯한 정통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인간 보호를 위한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해석합니다.
A. 인류 멸절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
홍수 직후, 노아의 가족은 단 8명이었던 반면 야생 동물들은 급속도로 번식했을 것입니다. 칼빈은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통찰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공포(Terror)를 통해 짐승들을 억제하지 않으셨다면, 소수의 인간은 짐승들에 의해 멸절당했을 것이다."
즉, 짐승들이 인간을 보고 느끼는 '공포(Chat)'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본성(Instinct)에 심어놓으신 초자연적인 억제력(Restraining Power)입니다.


B. 하나님의 형상의 잔재 (Imago Dei)
정통 유대교 주석가 라쉬(Rashi)는 이를 영적인 권위와 연결합니다. 살아있는 갓난아기는 쥐를 무서워하지 않지만, 죽은 사자 앞에서는 짐승들도 위축됩니다. 이는 인간에게 남겨진 '하나님의 형상'이 타락한 피조물들에게 여전히 모종의 영적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C. 육식의 허용과 관계의 단절
이어지는 3절에서 육식이 허용됩니다. 인간이 동물의 생명을 취하는 '포식자'가 된 상황에서, 동물이 인간을 피하려 하는 공포심은 생태계의 균형과 종의 보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4. 결론: 역설적인 은혜
창세기 9장 2절의 "Fear and Terror"는 슬픈 구절입니다. 피조 세계가 더 이상 에덴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서로를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죄의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은혜의 구절입니다. 타락한 세상,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위험 속에서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본성에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우리를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깨어진 세상마저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섭리(Divine Preservation)를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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