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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이야기다. 가진 것을 모두 헌금으로 바치는 가난한 과부를 예수님이 칭찬하셨고, 그것이 바로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라는 설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면 이 이야기의 초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은 이 이야기가 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본다.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2:41–44)

가난한 과부의 헌금 - 배경과 맥락
이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성전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중에 등장한다. 마가복음 11-13장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 11장: 예수님의 성전 청결
- 12장: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 폭로
- 12장 38-40절: 서기관들을 삼가라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 12장 41-44절: 과부의 두 렙돈
- 13장: 성전 파괴 예언
과부의 두 렙돈 장면은 서기관들에 대한 비판과 성전파괴 선언 사이에 등장하는데, 이 두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렙돈의 가치
과부가 바친 돈은 두 렙돈이다. 헬라의 가장 작은 단위의 구리 동전으로, 어떤 해석은 한 데나리온(하루 품삯)의 약 1/15이라고도 하고, 어떤 해석은 한 데나리온의 64분의 1이라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매우 적은 가치의 돈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성경은 이 과부를 “가난한 과부”라 부르는데, 이 가난은 절대적 빈곤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그녀가 넣은 두 렙돈은 “자신의 모든 생활비”였다.
예수님의 평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수준의 헌금을 드리는 가난한 과부를 보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예수님은 과연 이 과부를 칭찬하시는 것일까? 사람들에게 저 여인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시고 계신걸 까? 그 여인의 마지막 남은 돈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마지막 한푼까지 다 헌금해야 마땅하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이 본문에서는 그런 평가는 없다. 다만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 과부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넣었다는 평가만 하셨을 뿐이다.
종교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
가난한 과부가 자신에게 남은 전 재산을 드릴 수 밖에 없었던 것에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원래 서기관은 율법 전문가로서 율법 정신에 따라 과부와 고아의 법적 변호인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서기관은 이 책임을 저버리고 오히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가 되었다. 당시에는 율법 해석에 대한 급여를 받는 것이 부당했기 때문에 과부들의 환대에 의존하거나, 수임료를 높이기 위해 긴 기도를 외식의 수단으로 삼는 등, 가장 취약한 자들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유대 경전 미쉬나에 의하면 당시 성전에는 13개의 헌금함이 있어서 각종 명목으로 헌금을 거뒀다고 한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받기를 좋아했고 가난한 자들의 헌금을 받아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했다. 헌금하면 복 받는다는 식의 기복 신앙을 가르쳐서 예루살렘 성전은 점점 더 부자가 되고 호화롭게 살고 있었다.
서기관들을 삼가라
과부의 헌금 이야기 직전인 마가복음 12:38-39를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누가복음 12:38–39)
예수님은 대놓고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신다. 이 경고 직후 등장하는 것이 바로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다.
이 연결은 우연이 아니다. 예수님은 지금 서기관들이 만든 착취 구조를 폭로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우면서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정신을 무시하고 약자를 탈취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마지막 생활비 헌금에 경탄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약탈하는 종교 시스템을 한탄하고 계신 것이다.
성전의 심판
이 과부의 헌금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느니라 (마가복음 13:2)
이 순서 또한 의도적이다. 과부의 두 렙돈은 성전의 부패가 만든 비극의 상징이며, 그 직후 이어지는 성전 파괴 예언의 이유를 보여준다.
성전은 하나님의 법을 시행하여 약자들을 돌아보아야 했으나, 오히려 호화롭게 장식되고 부유해지는 상황 속에서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 그 성전은 무너질 것이다.
예수님의 사명은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지,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믿음의 헌신’으로 본 과부의 헌금
전통적으로 이 장면은 ‘전적인 헌신’ ‘온전히 드리는 믿음’으로 해석해 왔다. 초대교부 놀라의 파리스는 “그녀가 하늘의 상급을 받을 것이다”라며 찬양했고, 어떤 이는 그녀의 헌금이 자기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맡긴 믿음의 표현이라 해석했다. 오늘날도 많은 이들이이 본문을 “더 많이, 전부 드리라”는 헌금 권면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비판하신 서기관의 자리에 서게 될 수 있다.
예수님은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 마지막 동전까지 바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비판하셨다. 예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 헌금을 강조하는 종교 시스템을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으셨다. 그분의 마음은 헌금함이 아니라 가난한 여인의 빈 손과 메마른 삶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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